스타 꿈꾸는 설교자, 예능 돼버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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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꿈꾸는 설교자, 예능 돼버린 설교

And Now, the Star of the Show....

How we inadvertently create a cult of personality around our preachers.

설교자 일상 예화에 중독된 설교

게일리 목사는 이런 현실이 비교적 근래에 일어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불과 60년대 전만 해도 설교자는 자신의 일상에서 예화를 가져오는 일을 꺼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설교자는 자신도 청중과 같이 연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들도 똑같은 문제와 유혹 앞에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청중이 설교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로 오늘날의 설교는 설교자의 일상에서 들여온 예화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설교자는 이런 예화를 계속 사용한다. 왜냐하면 설교를 들은 청중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신에게 다가와 감사의 말과 함께 이런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사님의 가족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목사님 아이들 너무 귀여운 거 같아요!’ ‘목사님, 저는 정말 목사님과 같은 입장이에요.’”

“어떤 목사는 자신은 정말 단점만을 설교 예화로 사용한다고 변명한다.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진짜로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이렇게 자신을 낮추는 설교를 통해서 그들이 더욱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청중은 이런 설교자를 비난하기보다는 더욱 진실한 겸손의 예로 보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지 한 사람의 삶으로부터 가져온 예화는 결국 그 사람에게 이목을 집중시키고 예수님께 향하는 시선을 막는 효과를 피할 수 없다.”

게일리 목사는 이렇게 설교자의 일상을 예화로 사용하는 현상이 과도하게 나타나는 이유를 설교자의 상황에서 찾고 있다. “오늘날 너무 많은 설교자가 자신의 일상을 예화로 사용하고 있다. 왜일까? 청중의 반응을 사랑하기 때문은 아닐까? 설교자는 말씀 앞에 서 있음으로서 생기는 외로움과 불안에 끊임없이 맞서 싸워야 하는 사람이다. 설교자도 다른 모든 사람처럼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가까운 사람들이 자신에게 찾아와서 전해주는 칭찬과 이해의 말은 너무나도 달콤한 것이 되며, 자신도 모르게 이러한 반응에 이끌리어 설교하게 된다.”

 

일상 예화에 파산 선고를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방안은 무엇일까? 게일리 목사는 세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 설교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이야기나 목소리가 예배를 과도하게 이끌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찬양이나 기도 혹은 묵상과 같은 시간을 늘릴 수 있다.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성찬식을 더욱 자주 하는 것도 방법이다. “요점은 청중과 함께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둘째, 일상 예화에 과감하게 파산 선고를 하는 것이다. 힘들다면 일상 예화를 줄이는 노력이라도 하라고 한다. 설교자가 청중에게 이런 예화가 부적절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이를 줄이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다. 물론 페이스북과 유튜브 덕분에 사람들이 서로의 일상을 알고자 하는 욕망이 더욱 커지는 요즘, 이러한 시도는 무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이목을 쉽게 끌 수 있는 방법을 내려놓고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은” 어쩌면 어리석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상 예화의 해악을 충분히 않다면 과감한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일리 목사는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설교자는 더욱더 많은 시간을 마련하여 개인적인 일상이 아닌… 더욱더 넓은 독서와 고민을 통해 청중에게 다가가야 한다. 나아가 청중도 설교자가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충분히 배려해야 할 것이다.”

셋째, 설교자가 의식적으로 설교의 중심이 하나님과 복음을 향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로? 하나님에 대해서 한 주도 아니고 계속해서 설교할 수 있다고?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혀 지루하지도 않고 같은 내용을 반복하지도 않으면서 얼마나 설교할 수 있다는 거야?’ 나의 대답은 이렇다. 마치 하나님이 유한한 것처럼, 마치 하나님이 한 가지 모습만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마치 천국이 한 주만 지나면 지루해질 그런 곳이라면, 이 질문은 정말 정당한 것이다.”

자세한 기사는 위의 링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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