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하나님 나라 큐티 - 박영호, 회당과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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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하나님 나라 큐티 - 박영호, 회당과 교회

나마스떼 0 124

<회당과 교회>

갈릴리 호수 북쪽에 있는 가버나움은 아름다운 어촌이다. 예수님 공생애의 첫 무대이기도 하다.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 안드레 등 처음 제자를 부르신 곳, 병자를 고치신 소문이 멀리 퍼져 나가자 온 동네가 그 집 앞에 모였다는 곳, 그래서 온 몸이 마비된 환자를 친구들이 데리고 와서 지붕을 뚫고 침상 채 달아 내린 것도 이 마을이다. 이 어촌을 방문하는 순례객들은 파도 소리 들으며 상상한다. 어촌의 조그마한 집 앞에 사람들이 미어터지게 모이는 장면, 어디쯤 있었을까? 어떻게 생겼을까?

다행히 순례객들은 가버나움 해안에서 Peter's House 라는 간판을 볼 수 있다. 이 집이 베드로가 살았던 바로 그 집이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베드로 같은 어부가 살았을 법한 전형적인 가옥이라는 점에 많은 학자들이 의견을 모으고 있다. 건물은 그 후 몇 차례 개보수된 흔적이 있다. 애초에 개인주택이던 집을 그리스도교 예배의 장소로 개축해 간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이 집 개보수의 역사는 초기 교회 예배 공간 발전사 연구에 영감을 주는 모델이기도 하다.

이 집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 구글 맵에서 찾아 보면 도보로 1분이라 알려 주는 거리에 가버나움 회당이 있다. 웅장한 건물이다. 지금의 건물은 주후 4-5세기에 지어졌다. 그러나 이 위치에 예수님 시대에도 회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누가 복음에 의하면 로마 군대 백부장이 기부로 지어진 건물이다(눅 7:5). 나름대로 위용을 갖춘, 그 어촌 마을에서 가장 크고 당당한 건물, 공동체 삶의 중심이 되는 공간을 상상할 수 있다.

교회와 회당, 도보로 1분이라는 거리 감각은 유대교 내의 갱신운동으로 출발했던 초기 예수 운동과 유대교의 관계를 상상하게 하는 요긴한 단서이다. 2세기 초반 즈음에 기독교는 유대교의 모태로부터 떨어져 나와 독립적인 자기 정체성을 확립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 후 수백년동안 유대교는 물리적으로, 사상적으로, 문화적으로 기독교의 지근거리에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가버나움은 기독교 역사 재구성에 중요한 힌트를 준다. 다시 이 어촌의 상상을 이어가 보자. 가버나움 회당에 열심히 참여하던 한 가정의 아들이, 어느 날부터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베드로의 집”에서 모이는 신흥종교집단으로 갔다는 소문이 들린다. 부모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이웃 어른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오늘의 교회라면, 온 사회가 경계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지탄하는 이단에 빠진 아들을 대하는 부모의 반응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그것보다 훨씬 더 격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부모의 만류에도 아들이 뜻을 굽히지 않는다면, 아마 가정은 깨어지고, 부자는 원수가 될 것이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 “마태 10:34-36”

가버나움의 회당 앞에 서보면 이 말을 훨씬 더 실감할 수 있다. 이렇게 초기 예수 운동은 이렇게 회당과 대립하고 경쟁하면서 성장해 갔다. 1 세기 말의 유대인 기도문에는 “나사렛인들“을 저주하는 기도가 등장하기도 한다.

유대교 회당과 그리스도인들의 모임간의 긴장과 마찰, 그리고 물리적 근접성은 고린도로 옮겨 보면 더욱 실감난다. ......


- "하나님 나라 큐티"에 초대교회 이야기 연재하고 있습니다. 9/10월호에 실린 회당과 교회 이야기 앞 부분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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